용신도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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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신도령 입니다 . 항상 처음과 같이 생각해서 신령님 말씀 전하는 애동제자 입니다. 거짓 없이 공수대로 상담 해 드립니다
신당동의 유래부터 말씀드릴게요.
광희문(시구문:屍口門)
조선 임진왜란 때 이곳엔 시체가 산을 이루었다고 한다.
사대문안에 역병이 돌아도 시체가 즐비하던 곳
일제강점기 때도 시체를 모아두었다.
말 그대로 시체가 나가는 문이다.
시신이 나가는 길목엔 죽은 자의 명복을 비는 무당 집이 줄줄이 이어서 깃발이 빼곡히 들어선 곳, 광희문 바깥쪽을 무당골 . 신당 골(神堂谷)이라 부른 것이 지금의 신당동(新堂洞) 지명의 유래다.
광희문 밖의 고개도 '한 번 가면 다시 돌아올 수 없다'라고 해서 아리랑 고개라고 불렀다. 이 정도로 한 많은 영혼들이 많아 무속인 들도 쉽게 자리 잡기가 힘든 곳이다. '신당동에서 3년만 버티면 굶지는 않는다.'
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신적인 기운이(터가 센 곳) 강 한 곳이다.
이름 때문인지는 동수가 많아서인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신당동, 신당 5동만 남아있다.
신당 2동은 '다산동' 신당 3동은 '약수동' 신당 4동은 '청구동' 신당 6동은 '동화동'
으로 지명이 바뀌었다.
(서민들이나 소외계층이 많이 사는 동네는 동수가 많은 곳이 꽤 있다. 8동까지 있는 곳 10동이 넘는 곳도 있다. 특정 동네를 두고 말하는 거는 아닙니다.)
[출처] 신당동점집|작성자 용신도령
처음에는 저도 잘 모르고 신내림 받고 바로 자리 잡은 법당이 신당동이네요.
손님은 이어 이어 들어왔으나 먼가 모르게 남다른 기운이 범상치 않아서
애동 2년 차에 할아버지 공수 받아서 하나하나 알아보게 되었네요.
지금까지 법당을 이사해 본 적이 없습니다.
매년 찾아주시는 손님들 덕에 법당 옮길 일은 없을 겁니다.
궁금하고 불안한 미래에 점사를 보러 다니시는 분들이 제일 중요한 부분이
신점이던, 철학이던, 개인 사찰이던, 타로 등등 잘 맞추는 곳을 찾아다닙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과거점 보다 미래점이 중요하죠.
요즘에는 신 내림 받고도 철학, 타로 배우고 굿 장단 배우고 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이분들도 자기의 나름대로의 뜻과 길이 있겠지요.
하지만 저는 아직까지 형식과 틀에 매이지 않고 나오는 공수대로 전달하고
상담하는 제자입니다.
어느 것이 더 좋다고는 말하기가 어렵네요..
판단은 여러 군데 점사 보시고 본인이 하는 게 맞습니다.
한번 보고 가시면 기억에 남는 제자의 길을 가겠습니다.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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